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04 대한민국 (문단 편집) ==== 청나라 ==== * '''[[서태후]]''' 청나라의 황태후이자 실권자. 광서제를 밀어내고 제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지만 무능하고 욕심 많은 노파로 묘사된다. 실책에 실책만 연발하여 제국이 산산이 쪼개지고 원새개에 배신당해 북경이 반란군에게 함락당할 위기에 놓인다. 서태후는 상황 판단 못하고 금군 1만 명을 40만 반란군 앞에 돌진시키지만 금군은 전멸, 지방관들도 원새개를 지지하거나 중립을 취했기에 원군조차 없어서 북경 함락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북경이 함락당하는 순간 광서제와 함께 한국에 의해 구출되어 만주로 오는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쯤 미쳐버렸다. * '''[[광서제]](광왕)''' 청나라 황제. 흑역사에서는 죽은 뒤 [[선통제]]가 즉위해서 마지막 황제가 아니지만 청나라가 흑역사보다 빨리 망했기 때문에 졸지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회군한 신건군에 의해 북경에 갇혀버리지만 북경이 함락당하기 직전 한국에 의해 구출되어 만주국으로 온다. 한국은 광서제를 만주국 왕에 임명하지만 광무황제에게 [[삼궤구고두례]]를 갖추라고 지시하고, 광서제는 광무황제 아래 머리를 아홉 번 찧는다. 이후 흑역사보다 4년 더 오래 살아 1912년 관상동맥 심장병으로 사망하며, 한국 황실에 의해 덕종이라는 묘호를 받는다. * '''[[순친왕]]''' 선왕의 아버지. 융희황제로부터 감국섭정왕(監國攝政王) 칭호를 받아 어린 선왕을 보필했다. * '''[[선통제|선왕]]''' 순친왕의 아들. 흑역사에서는 [[선통제]]로 불렸지만 청나라 황실은 만주국 왕실이 되었으므로 후사가 없는 광왕의 뒤를 이어 만주국의 2대 왕으로 즉위했다. * '''[[임발천]]''' 청나라 만주원정군 사령관. 다른 이들과 달리 원새개보다 일찍 관직에 오른 데다가 중도를 지키고 있어서 원새개 파벌이 아니었다. 몽골원정군을 지휘하지만 한국과 연합한 몽골 군에 대패한다. 이후 만주를 정벌하러 준비를 하던 중 원새개의 심복 홍유생으로부터 북경을 포위하라는 원새개의 밀서를 받는데, 임발천은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그러자 홍유생은 권총으로 임발천의 머리를 쏴버렸고 임발천은 그대로 죽었다. 임발천의 부하 대부분이 원새개의 수하였기 때문에 암살을 방관하는 것도 모자라 적극적으로 반란에 찬동하여 깃발을 거꾸로 들었다. * '''[[송지문]]''' 청나라의 내무대신. 서태후의 금군을 출동시켜 북경의 포위를 풀려 하자 숫자와 무장 모두 신건군에 밀리는 금군을 출격시키기 보다는 서태후가 직접 나서 원새개를 달래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가 분노한 서태후에 의해 처형당한다. * '''[[곽산양]]''' 청나라의 금군대장. 서태후의 명에 따라 송지문을 죽인 뒤 금군 1만 명을 이끌고 북경의 포위를 풀기 위해 출정한다. 하지만 송지문 말대로 숫자와 무장 모두 뒤떨어지는 금군이 신건군을 격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곽산양과 금군 1만 명은 원새개의 명을 받고 출동한 진계립과 기병 3만 명에 의해 짖밟힌다. 원새개 측은 곽산양의 능력을 아까워하여 가능하면 투항을 받으려고 했지만 곽산양은 끝까지 싸우다가 무수한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죽으면서 300년을 이어온 대청국이 제때에 죽지 않은 늙은 노파 때문에 망한다고 한탄했다. 그가 죽고 세 시간 뒤 북경이 함락되면서 청나라는 종말을 고한다. * '''[[황비홍]]''' [[홍가권]]을 익힌 무술가. [[상하이]]에서 이테 일행을 만나 하루꼬의 병을 치료해주고 국정원 요원들을 때려눕혔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박형국에게 패배하고, 그대로 이테 일행과 헤어지지만 그들이 맡긴 모택동에게 [[홍가권]]을 가르쳐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